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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도- 여행

<보길도>윤선도가 사랑한 섬 보길도 2 [전남 완도]

by 운솔 2015. 3. 22.

보길도 하면 어부사시사 고산 윤선도가 먼저 떠오르는 섬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의 문신, 시인, 학자 윤선도가 여생을 보낸 곳이다.

완도군 보길면 부황리에 위치하고 있는 보길도 윤선도 원림은

대한민국의 명승 제34호로 지정된 문화재이기도 하다.

 

몇 년 전 해남 땅끝마을을 간 적이 있는데 그때 보길도를 가려고

선착장에서 배편을 알아 보니 그날 파도가 심하고 날씨 상황이 좋지 않아

배가 출항을 못한다고 해서 아쉽게 그냥 돌아온적이 있었는데.

지난봄 남편이 자유로운 몸이 되면서 마음먹었던 남도여행.. 보길도 .

 

집에서 몇 시간을 달려 내려온 완도에서 하루 숙박을 하고

아침 일찍 완도 화흥포항으로 가서 선박에 자동차를 싣고

노화도 동천항에 내려 동백꽃, 유채꽃이 반겨주는

윤선도가 사랑한 섬 보길도를 찾아갔다. 2

 

014-04-01 <보길도>윤선도가 사랑한 섬 보길도 [전남 완도]

 

http://blog.daum.net/ng5800/13723309동백꽃 향기 찾아 떠난 남도 여행 보길도 1 (전남 완도)

http://blog.daum.net/ng5800/13723311 보길도에서 만난 봄 풍경/송시열 글 쓴 바위 3 <전남 완도>

 

 

고산 윤선도 원림의 세연정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정원 양식을 하고 있는 곳이라고 한다.

 

보길 윤선도 원림 관광정보센터

 

 

전시된 작품들 〈어부사시사〉 등

주옥같은 한시를 이곳 보길도 부용동에서 창작하였다고 한다.

 

 

관광센터를 나와 윤선도 원림 세연정으로 가는 길

 

필 때와 질 때가 같은 모습이라는 .. 낙화한 동백꽃.

 

 

돌담에도 동백꽃이 ...

 

숲에서 뚝뚝 떨어지는 동백

 

마치 연못에서 피어난 꽃 같다.

 

 

세연정

 

세연이란 "주변 경관이 매우 깨끗하고 단정하여
기분이 상쾌해지는 곳"이라는 뜻의 글 ..

 

 

고산 윤선도는 제주도로 가다가 거센 풍랑을 만나 이곳 보길도로 들어오게 되었는데

보길도의 풍광에 반해 이 세연정 부근을 부용동이라 이름 짓고 전통 정원을 꾸몄다고 한다.

 

부용동은 자연 계곡을 막아 연못을 만들고 연못 가운데 세연정이라는 정자를 지어

아름다운 정원을 꾸미고. 윤선도는 이곳에서 어부사시사 등의 글을 썼다고 한다.

 

이 부용동은 담양의 소쇄원 그리고 영양의 서석지와 함께 3대 전통정원으로 꼽히는데

이 세 정원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이 이 부용정이라 한다.

 

 

세연정 정자 명승 제34호로 지정된 세연정은 두 못 사이에 세운 정자가

세연정으로 세연이란 "주변 경관이 매우 깨끗하고 단정하여 기분이 상쾌해지는 곳"

이라는 뜻으로 주로 연회와 유희를 즐기는 장소였다고 도 한다.

 

 

 

 

 

 

 

 

세연정 앞에 초등학교가 있는데

그곳 학생들이 봄을 맞아 야외학습 나온 듯하다

 

세연정 연못으로 흐르는 맑은 냇물

 

 

 

 

 

 

 

 

 

 

 

 

 

 

 

 

 

선생님과 야외 학습 나온 학생들 표정이 참 밝기도 하다.

 

 

 

 

http://blog.daum.net/ng5800/13723309

동백꽃 향기 찾아 떠난 남도 여행 보길도 1 (전남 완도)

 

http://www.wando.go.kr/open_content/life/township/bogil/tour

보길도 홈페이지

 

*고산 윤선도 <1587~1671년> (정보 수집)


고산은 조선 중기 대표적인 시조시인이자 조선조 시조문학을 마지막 장식한 대가이다.
그는 시조문학뿐 아니라 철학과, 천문, 지리, 음악, 의약 성리학 등 실용적인 학문을 추구한 이로

그의 실사구시적인 학풍은 이후 해남 윤 씨 가의 가풍으로 자리매김된다.
고산은 실사구시적인 학풍을 추구했던 만큼 아름다운 우리말로 시를 노래한다.

철 따라 바뀌어가는 자연의 모습을 아름다운 우리말로 노래한 어부사시사와 오우가 등은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는 선비의 생활과 서정을, 절제된 언어로 표현한 선비 시조의 최고봉이자

산수 미학의 절정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고산은 또 조선 최고의 조경문화를 남긴 이다.


한국적 미 감각에 의해 창작한 그의 원림은 해남 금쇄동과 완도 보길도 등에 남아있다.
그가 남긴 원림은 순수 자연을 그대로 둔 채 거기에 최소한의 인위만을 가미해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창출한 점에서 동양적인 자연관을 보여주며 그의 높은 미적 안목을 느끼게 한다.

고산 생애 대부분은 귀양과 은둔이었고 이러한 그의 불운한 삶이 불후의 명작들을 남기게 했다

.
고산의 자는 약이, 호는 고산 또는 해옹이다. 광해 8년(1616) 성균관 유생으로

권신의 횡포를 지탄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첫 유배 길에 오른다. 인조반정으로 석방된 후

별시문과의 초시에 장원한 후 봉림과 인평대군의 사부가 된다.


병자호란 이후 주로 완도 보길도와 해남 수정동 및 금쇄동에 은거하며 자연에 원림을 짓고

산중신곡과 어부사시사 등 불후의 명작을 남긴다.

그 사이 효종의 부름으로 벼슬에 나아갔으나 당쟁으로 다시 유배되는 등 파란을 겪다

현종 12년 85세로 보길도에서 생을 마감한다. 숙종은 즉위 원년에

고산을 이조판서에 추증하고 충헌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 고산문학 산실 -  보길도와 수정동, 금쇄동
완도 보길도와 해남 현산 금쇄동 및 수정동은 고산의 대표적인 문학 산실이자

원림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곳이다.

수정동에서는 산중신곡 19수와 속 산중식곡 2수, 기타 5수 등 모두 26수의 시가를 남긴다.

오우가는 산중신곡에 들어있다.
또 금쇄 동기에 22개의 지명을 남기는데 모두 그에 합당한 의미를 붙여 이름을 지었다.


보길도는 바닷가에 지은 원림이고 금쇄동과 수정동은 산속에 지은 원림이다.
고산의 원림 문화는 한마디로 동양의 자연관과 성리학의 사상이 함축돼 있다.

자연과 인공의 조화를 통해 자연과 사람이 하나가 되도록 한 윤선도의 뛰어난 안목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고산은 병자호란 때 왕이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제주도로 향하다 보길도의 자연경관에 감탄해 머물게 된다.
보길도는 고산이 인조 15년(1631) 51세 때부터 13년간 글과 마음을 다듬으며,

‘어부사시사’등 시가를 창작한 국문학의 산실이다.

또한 그가 섬 안의 바위와 산봉우리에 붙인 이름은 아직도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