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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도- 여행

<보길도>에서 만난 봄 풍경/송시열 글 쓴 바위 3 <전남 완도>

by 운솔 2015. 3. 23.

보길도에 와서 처음으로 가장 많은 동백꽃을 본 것 같다.

반은 이미 낙화되고 있었지만 ....

보길도의 대표적인 명소인 세연정과 뾰족산, 보옥 공룡알 해변,

송시열 글쓴바위 예송리 해안, 망끝 전망대 동백꽃 등 ..

섬 구석구석 돌아보면 만나게 되는 풍경들이다.

보길도는 마치 역사 탐방을 온 느낌이 들기도 했다.

세연정을 나와 우담 송시열의 글 쓴 바위를 찾아갔다.

 

2014-04-01 보길도에서 만난 봄 풍경/송시열 글쓴바위 3 <전남 완도>

 

http://blog.daum.net/ng5800/13723309

동백꽃 향기 찾아 떠난 남도 여행 보길도1 (전남 완도)

http://blog.daum.net/ng5800/13723310

 

<보길도>윤선도가 사랑한 섬 보길도 2 [전남 완도]

보길도 하면 어부사시사 고산 윤선도가 먼저 떠오르는 섬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의 문신, 시인, 학자 윤선도가 여생을 보낸 곳이다. 완도군 보길면 부황리에 위치하고 있는 보길도 윤선도 원림은

blog.daum.net

윤선도가 사랑한 섬 보길도 2 [전남 완도]

 

 

한적한 숲 돌길을 따라 올라간다.

 

 

호젓한 산길을 따라 올라가니 송시열의 암 각시 문이 새겨진 글이 보인다.

 

 

보길도 앞바다에 가득한 전복 양식장

 

다도해 청정바다의 전복 양식장  

 

보길도 송시열 글 쓴 바위 앞에서..

차를 타고 오다 보니 이렇게 도로 끝 ..

송시열 글 쓴 바위 가는 길 이란 안내판도 없어 당황스러워하다

그냥 올라갔다.

 

큰 바위에 새겨진 글 83세 늙은 이 몸이 거칠고 먼 바닷길을 가노라

한 마디 말이 어찌 큰 죄가 되어 세 번이나 쫓겨가니

신세가 궁하구나 북녘 하늘 해를 바라보며 남쪽 바다 믿고 가느니

바람뿐이네

초구(임금이 하사한 옷)에는 옛 은혜 서려있어

감격한 외로운 속 마음 눈물 지우네

 

 

바위에 새긴 글에 탁본을 떠서 그런가 바위가 검은 먹물이 들어있다

탁본하는 사람들이 많았는지

탁본 행위 금한다고 쓰여 있다.

 

조선 숙종 때 영의정이었던 우암 송시열은,
1689년 왕세자가 책봉되자
이를 시기상조라 하여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숙종의 노여움을 사게 되어
83세의 고령의 나이에 제주로 귀양을 가게 된다.

배를 타고 보길도 인근을 지나다 갑자기 불어닥친 풍랑을 피해
보길도에 잠시 머물며 자신의 참담한 심정을
바위에 글로 새겨놓은 곳이 이곳이다.
당시 세상에 대한 한탄과 임금에 대한 원망이 배어있다.
이후 우암은 국문을 받기 위해 서울로 압송되는 도중
전북 정읍에서 사약을 받고 죽었다.

 

 

 

 

송시열의 글 쓴바위가 있다고 해서 찾아왔지만

사실 글보다 주변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에 더 관심이 갔다

 

 

송시열 글쓴 바위를 뒤로 하고 예송리로 오는 길에

전망대 정자가 있어 잠시 차를 세우고 해수욕장과 바다를 감상하며

가지고 간 과일을 깎아 먹으며 쉬었던 곳 .

 

전망대에서 보이는 섬들

 

 

 

 

예송리 해변으로 가는 동백나무 길

 

예송리 해수욕장의 주차장

 

예송리 해변

 

 

예송리 해변의 갯돌

 

예송리 해수욕장 검은 갯돌

 

 

 

보길도를 한 바퀴 다 둘러보고 나오다가 심원위재(深原緯齋)라고 써 있는

어느 고택에 문이 열려 있어서 들어갔더니 사람이 거주하고 있는 개인 집이었다.

 

정원엔 벌써 봄 꽃들이 가득하다

 

 

수선화

 

자목련

 

집주인의 양해를 얻어 집안으로 들어갔더니

정원에 꽃 들이 가득 피어 있었다.

 

고암 김양재의 고택 "심원위재"(深原緯齋)는 지은 지 200년 남짓 된 고택인데
행랑채에 낸 문을 들어서면 ‘행율당(杏律堂)’이란 현판을 내건
사랑채 앞으로는 봄 꽃이 가득한 정원이 펼쳐져 있었다.

 

현재는 모 대학 교수였던 사위가 정년퇴직을 한 후

 경주 김 씨의 후손인 아내와 함께 심원위재를 지키고 있다고 한다.

 

 

 

 

심원위재의 주인 김양재는 300년 전쯤 보길도로 들어와 뿌리를 내리고
제법 큰 부를 일궜던 경주 김 씨 일가의 후손이라고 한다.
그는 생전에 간척사업과 임업, 교육사업 등을 펼쳤는데,
세연정 옆의 보길초등학교도 그의 아들 손으로 세워졌다고 한다.

마당에 석탑도 있다.

 

 

 

보기 드문 열려 비가 있어서 들어갔다.

 

 

 

열려비 주변에 떨어진 동백꽃

 

노화도 동천한 부두에서 ..

 

 

저녁 무렵 노화도 동천항에서 다시 완도 화흥포항으로 가는 배를 타고 ...

 

보길도의 1일 여행을 마치고 -완도로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