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베트남---여행

[베트남 다낭]링엄사(영응사) 해수관음상 /하이번 언덕

by 운솔 2015. 6. 8.

◎[베트남 다낭]링엄사(영응사) 해수관음상 /하이번 언덕 

 

다낭 해안 미케비치에서 멀리 보이는 손짜반도에 있는 링엄사(영응사)에

높게 서 있는 해수관음상이 보러 갔다.

 

이곳 해수관음상을 베트남 사람들은 '투옹팟 콴세음'이라 부른는데.

여기서 투옹팟은 불상이란 뜻이라고.... 관음보살상의 높이는 67m나 되는데.

동양최대 관음상이라고 한다.

 

비밀의 사원이라 불리는 바다를 마주보고 있는 사원 이 영응사는

월남전때 전쟁에 패하며 자유를 찾아 탈출하던 많은 베트남 사람들이

이 바다에서 빠져죽었다고 한다.

 

탈출하다 죽음을 맞은 사람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사원과

해수관음상을 세웠다고 하는데 마치 중국의 사원을 보는듯 하다.

이 절을 지은 다음부터는 다낭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고도 한다.

 

2015-01-04 [베트남 다낭]링엄사 해수관음상 /하이번 언덕

 

 

67m 높이의 해수관음상

 

 

영응사

 

링엄사(영응사)

 

 

영응사 법당앞에 분재 나무와 동물형상 위에 타고 있는 나한상들

 

 

 

영응사의 수석과 분재

 

해수관음상

 

온화한 미소로 바다에 떠도는 원혼을 달래주는 해수관음상

 

 

다낭 바다를 향해 서 있는 67m 높이의 해수관음상

 

 

 

관음상 연꽃 좌대 아래의 법당

 

 

 

바다로 향하는 문

 

 

영응사에서 바라본 미케비치와 다낭시내

 

 

 

영응사를 나와 점심을 먹으려고 택시 기사에게

해산물 잘하는 음식점으로 가달라고 했더니 로컬 음식점 같은 집으로 안내를 한다.

메뉴판도 베트남어로 되어 있고 뭐가 있는지도 모르고 말도 안통하고

그냥 자리에 앉아 있으니 삶은 메추리알을 가져다준다.

 

메추리알을 까는 순간 모두가 기절을 하고 말았다.

부화되기전의 새기가 들어있는 메추리알이었다.

 

거기다 다른 손님이 먹고 있는 해산물 찌게 온통 알수도 없는 향채맛

문화적 차이겠지만

웬지 찜찜한 마음에 기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냥 베트남 쌀국수집으로 갔다.

 

 

어느시장 근처의 골목으로 한참을 돌고 돌아서 기사가 데리고간 베트남 분짜 국수집

이곳 현지인들 사이에 소문난 집 인가 보다.

점심을 먹고 있는 손님들이 많았다.

 

베트남의 비빔국수 분짜

가느다란 쌀국수가 아닌 우리나라 칼국수마냥 넓적한 면이다.

 

자작한 국물에 비벼먹는데 도대체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

 

허브와 향채 바나나꽃 채썰은것을 한 접시 담아 준다.

국수 값 외에 따로 계산 ...

 

보기 보다 너무 맛이 안나 ..그냥 초 고추장 넣고 비벼 먹고 싶은 생각만 .. ...

 

 

겨우 분짜 한 그릇 먹고...

바람과 구름의 하이번 언덕으로 ...

 

 

다낭 하이번 고개는 우리나라 강원도의 미시령 고개 같은 길이다.

2005년도에 개통 된 4km가 넘는 하아번 터널덕에 후에 -다낭간

1시간이나 단축되었다고 한다

 

위치 아래 지도 참고...

 

 

배트남 다낭에서 후에로 가는 바람과 구름의 하이번 고개

 

 

다낭과 후에를 잇는 해발 500m에 위치한 하이번 고개

베트남어로 하이는 "바다" 번 은 "구름"이란 뜻이라고 한다.

 

 

휴게소앞에서 ..

 

 

 

하이번 고개의 휴게소

자기 종족이 끌려가는걸 보고 안타까워 쫒아가며 짖어대는 개를 보니

나도 안타깝다

 

 

베트남 남과 북의 경계지역인 하이번 고개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의 전략 요충지였던 곳 아직도 벙커가 그대로 남아 있다.

배트남 다낭에서 후에로 가는 하이번 고개는 우리나라 청룡부대가

이곳에서 작전을 펼치며 베트콩과 많은 교전이 있었던 곳이라고도 한다

 

 

 

해운관 성문앞에서 베트남 1달 자유여행~청춘 팀 기념샷...

아직도 전쟁의 흔적인 총탄 자욱이 건물벽과 벙커에 그대로 남아 있다

 

 

 

베트남 전쟁 -

 

베트남 전쟁 은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이후 분단된 베트남의 독립과
통일에 대해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이 개입한 전쟁이다.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이 대립하던 냉전 시대의 대리 전쟁 양상을 띠기도 하였다.

1955년 11월 1일 베트남과 라오스, 캄보디아에서 전쟁이 벌어졌다.
내부의 저강도 무장 투쟁에 개입하기 시작하였다고 보고 있다
남북의 정규군이 전투를 벌이기 시작한 날은 1959년 9월 26일이다.

 

북베트남은 1954년 제네바 협정에 따른 베트남 전 지역의 보통선거로 단일 정부를
구성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미국은 이를 거부하고 베트남 공화국을 세워
남베트남에 독자적인 반공 정부를 만들고자 하였다.
이에 반발한 북베트남이 남베트남을 공격하면서 베트남 전쟁이 시작되었고,
미국은 도미노 이론을 내세워 베트남 전쟁에 개입하였다.

 

전쟁기간 동안 남베트남군과 미군은 제공권을 장악하고 있었고,
비교할 수 없이 막강한 화력을 앞세워 폭격과 공습, 포격, 육상 부대 작전을 혼용한
수색 섬멸 작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많은 민간인이 희생되었는데,
특히 네이팜탄과 같은 대량살상무기의 투하, 고엽제와 같은 화학 무기의 사용,
여성과 아동, 노인을 대상으로 한 학살 등은 국제적인 비난의 대상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 내의 반전 운동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1973년 프랑스 파리에서 평화 협상이 성사되어 미군이 철수하였고,
베트남 전쟁은 사이공 함락이 있었던 1975년 4월 30일까지 계속되었다.
베트남 전쟁 종료 이듬해인 1976년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자료 위키백과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