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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산문,Photo

♣꽃순이 할머니 ..

by 운솔 2006. 12. 11.
    내가 처음 인터넷을 배우며 네띠앙에 홈을 만들어 놓았을때 내 홈을 가끔 방문해 주시던 정읍에 계시는 김동필 시인님이 계셨었다. 처음엔 사이버 홈을 통해 누군가를 알게 되고 글을 나눈다는게 참 신기하고 설레이고 했었는데 어느날 김동필 시인님이 자신의 시집과 수필집을 보내 주시겠다고 주소를 알려달라고 했을때 난 모르는 사람에게 함부로 주소를 알려줘도 되는가 하는 의구심으로 망설이다가 60대 중반이나 되신 그분의 연세에 놀라 안심을 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소를 알려드렸더니 .며칠뒤 노란 봉투로 포장을 한 시집과 수필집에 싸인을 하시고 낙관도 찍으셔서 우체국 소포로 보내 주셨다. 그 후 가끔씩 좋은글과 안부의 메일을 보내 주시던 선생님께서 얼마전 건강이 안 좋아 시한부 삶을 사신다는 메일을 받고 마음이 많이 아팠다. 나는 건강을 기원하는 글을 드리면서 기적을 바랬는데 오늘 우연히 내 블로그를 다녀가신 mywayyung님의 글을 보고 깜작 놀랐다 김동필 시인님의 장조카분이라며 지난 7일 김동필 시인님이 지병이던 ‘만성 폐쇄성 폐 질환’으로 하늘로 가셨다는 것이다. 생전에 시인님은 문인협회 이사와 정읍문화원 이사, 정읍예총 자문위원 등 왕성한 활동을 해 오신 분인데 비록 한번도 뵌적은 없지만 사이버의 오랜 인연으로 함께 했던 분이라 마음이 많이 아프다.. 얼마전 내가 팔목이 아프다고 했을때도 걱정하는 메일을 보내주셨는데 그것이 선생님의 마지막 메일이 되었다. 김동필님 고이 잠드소서...선생님 명복을 빕니다... 선생님 소원대로 노란 들꽃으로 다시 태어나시길 바라며. 노란꽃을 올립니다 . ........................................................................................

     

    아래글은 2006년 8월 23일 수요일에 보내주신 시인님의 글인데 이곳에 옮겨봅니다. 꽃순이 할머니 김 동 필 <수필가 · 백제예술대학 외래교수> 해질 무렵이면 산책길에서 자주 만나는 할머니는 팔십 노인인데, 나와 살아가는 이야기를 자주 나눈다. 아들 하나와 그 아래로 딸 둘을 둔 할머니다. 아들과 함께 사는 할머니는 비교적 넉넉하게 사는 편인데도 한숨을 자주 쉰다. 할머니는 걱정 하나를 가지고 있다. 시집간 큰딸이 2천 만원, 작은 딸이 3천 만원의 거액의 돈을 아들한테 빌려간 지가 벌써 여러 해인데, 갚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두 딸은 근년에 사업만 벌여 놓으면 실패라서 빚 갚을 능력이 전혀 없다고 한다. 그런데 아들은 날마다 빚 독촉을 하고 있단다. 할머니는 오늘도 나한테 하소연을 한다. “이럴 때 어찌하면 좋소? 내가 아들보고, 받을 생각은 하지 말라는 말도 못하고, 딸들 보고 빨리 갚으라는 말도 못할 형편인데, 차라리 내가 쥐약이라도 먹고 두 눈 딱 감아버리면 좋으련만 그러지도 못하고… ” 말끝을 흐리며 지팡이의 흙을 털어낸다. “할머니, 너무 걱정 마세요, 딸들이 착실하니까 갚는 날이 곧 오겠지요” “나는 우리 집에서 송장이나 마찬가지요, 영감은 술만 먹다가 일찍 죽어 버리고… 요새 세상에 며느리한테 밥 얻어 먹기도 힘든데 …. 나도 처녀 때는 꽃처럼 예쁘다하여 내 별명이 꽃순이었는데… 오늘 날, 내 신세가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소.… 후유” 저무는 하루의 그림자가 잔디밭에 내려앉을 무렵, 할머니의 한숨 소리가 지나는 미풍을 가른다. 시원한 답을 내 주지 못한 내 가슴이 찡하다. 큰 산이 큰 골짜기를 만든다더니 인생 살이에서 어려움을 많이 겪어온 할머니의 가슴 안엔 견디기 어려운 무게가 실려 있다. 지금 할머니에겐 자신을 믿었던 용기도 다 퇴색되고, 일상사에 주눅이 들어 희망이 꺾인 지 오래다. 나뭇가지가 자신을 위해 그늘을 만들지 아니하듯 할머니는 노구(老軀)를 돌보지 않고 오직 두 딸만 걱정하고 있다. 가난한 딸들의 아픔을 걱정으로 감싸는 일은, 저 꽃잎이 미세한 떨림으로 향기를 감싸는 일과 같으리라. 오늘은 할머니가 비장한 각오로 또 입을 여신다. “나는 죽어서 다시 태어난다면, 날으는 새로 태어나야겠어. 아무 걱정 없이 하늘을 훌훌 날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나를 향하여 “당신은 무엇으로 태어나겠소?” 하고 묻는다. 나는 서슴없이, 평소 마음에 간직해 두었던 문제라서 “저는 들길에 곱게 핀 노오란 작은 꽃으로요.” 할머니는 놀란다. 왜 하필이면 노오란 꽃이며, 그것도 큰 꽃이 아니라 작은 꽃이냐는 태도다. 내가 좋아하는 노오란 꽃, 땅에 엎드린 작은 꽃이기에 누가 꺾어갈 염려도 없으니 얼마나 좋겠느냐고 나는 힘 주어 말하고 있었다. 내 말을 들은 할머니는 “대저, 그렇겠어. 새는 날다가 날개라도 부러지는 날이면, 큰 걱정일거고, 꽃이야 그럴 리가 없지? 참 좋은 생각이야, 나도 그러면 꽃으로 태어나겠어. 나는 분홍 꽃으로” 하고, 혼자 가늘게 웃는다. 그날 저녁 나는 평소 써 두었던 시를 할머니에게 읽어 드릴 욕심으로 큰 글씨로 써 놓았다. o 노오란 꽃으로 o : 눈을 감고 많은 날을 생각했어도/ 나는 노오란 꽃으로 남고 싶었다/ 들길 하얀 억새풀에 가려/ 조금 얼굴을 내민/ 그리움으로 피어난 노오란 작은 꽃/ 지나는 사람이 이름을 불러 주지 않으니/ 가슴 설렐 일도 없고/ 몸도 키도 저렇듯 작으니/ 꺾어 가는 사람도 없으려니/ 달빛도 조율되어 흐르는 밤/ 반딧불처럼 떠다니는, 어떤 고독한/ 영혼을 위로하는 사랑의 꽃이 되어/ 눈물 한 줌 짜주고 싶다. 이제 막 집을 지으려는 누에 같은 할머니의 하얀 모습에서, 염랑거미의 한살이를 보는 듯 싶다. 자기 몸을 밥으로 내어주는 처절한 희생을 보여 주는 염랑거미, 알에서 깨어난 유충들은 어미의 육신을 갉아 먹고 자란다. 어미거미는 새끼들을 위해 제 몸을 먹이로 바치고, 짧은 생애를 마치고 만다. 등걸로 남더라도 더 주고 싶은 게 어미의 마음이다. 나무가 자신을 위해 그늘을 만들지 않듯 늘 새끼를 걱정하는 것이 어미의 본성이다. 한 고비 넘으면 또 다른 슬픔의 무늬가 가슴에 찾아 든다. 운명처럼 체념하면서 산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으리라. 괴로워하는 이에게 한마디의 위로의 말은, 아픔을 잠자게 하고, 눈물을 씻어주는 손수건이 된다. 그런데 나는 할머니에게 드릴 마땅한 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마주 앉으면 송구스럽다. 가을바람에 억새풀 우는 음향이 할머니의 가느다란 음성에 뒤섞인다. 유화청절(柳花靑節)로 곱게 피었던 꽃순이의 젊음은 어디로 갔을까? 지금은 황성 옛터에 흔들리고 있는 외로운 쑥대, 아직도 남아 있는 백수풍진(白首風塵)의 아픔을 어찌할거나. 할머니의 기도에 성부(聖父)의 감화가 내려, 두 딸이 큼직한 돈뭉치를 안고 대문간에 들어설 날이 멀지 않으리라. 그날, 꽃순이 할머니의 넉넉한 미소에 귀촉도(歸蜀道)까지도 울자리를 잃고 기쁨에 혼절(昏絶)할 것이다. 더 먼 훗날, 어느 들길에 핀 분홍 꽃과 노오란 꽃이 주고받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아름다울 것을 나는 믿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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