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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향기,일상

★한 많은 여인의 일생 ..

by 운솔 2004. 5. 8.

어머니.... 당신의 이름은 세월과 함께 깊어가는 그리움입니다.

인고의 세월 동안 다 쏟아내지 못하고 참고 참으며 가슴속에 묻어 두었던 한 깊은 사연들.....

안으로 인내하며 흘린 어머니의 눈물은 아직도 당신의 가슴에 ]

오래도록 슬픔의 강이 되어 흐릅니다.

2004.5.8 .고은솔 -

순이 엄마이야기 -.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순이 엄마는 어렴풋이 내 가슴에 그리움으로 남는 사람이다.

순이는 나와 동갑이었는지 한 살 아래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한 학년이 아래였던 친구였다.

내가 7살쯤 처음으로 충청도의 어느 시골 동네 순이네 윗집으로 이사를 가면서

순이네 가족과의 슬픈 인연이 되었다.

순이네는 할머니와 아버지, 삼촌, 그리고 여동생이 3이나 되는

대 가족이었고 딸 부자집이었다

순이와 함께 나는 냇가에서 가재도 잡고 들로 산으로 돌아다니며 찔레순도 꺾어 먹고

산딸기도 따먹으며 그렇게 어린시절을 함께 뛰어놀며 보냈다.

내게는 지금도 가장 아름다웠던 추억으로 남아 있는 마음속의 고향 같은 곳이기도 하다.

어릴적 내가 기억하는 순이 할머니는 순이 엄마에게 아주 무서운 호랑이 시어머니였다.

몸이 약하고 마음이 착했던 순이 엄마는 6.25 때 부모님을 잃고 시골의 어느 집에 수양딸로 있다가

20살쯤 되자 중매로 순이 아버지를 만나 결혼을 하였다고 했다.

시집와서 내리 딸만 넷을 낳자 순이 할머니의 며느리 구박은 더 심해졌고

순이 엄마는 약한 여자의 몸으로 순이 아버지 대신 똥지개를 지기도 하고

산에 가서 나무도 해오고 남자들이 해야 할 온갖 궂은일을 다 해냈다.

그때 비록 내가 어린 나이 였지만 순이 엄마가 불쌍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가끔 우리 엄마 앞에서 하소연 하며 눈물을 흘리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시어머니와는 달리 순이 아버지는 참 착한 사람이었던 것 같았다.

그때 도시락 가방도 순이 아버지가 나이론실로 짜주고 그랬었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 .. 친정도, 친척도, 형제도, 없으니 시집에서 쫓겨나면 갈 곳도 없고

시어머니의 모진 구박도 서러움도 참으며 살수밖에 없는 여인의 운명이었다...

읍내에서 살다 이사온 엄마에게 순이 엄마는 늘 궁금한 게 많았다.

서른이 넘도록 한번도 도시를 가본 적도 없고 시장 구경을 해본 적이 없는 순이 엄마는

시장 구경을 한번 가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었다.

40년전.. 그 당시 촌에는 버스도 잘 없고 5일 장날이면 잡곡이나 산나물을 뜯어서 머리에 이고

소 달구지를 타고 가든지 아니면 새벽부터 산 고개를 넘고 넘어 몇 십리길을 걸어가서

물건을 팔고 필요한 것을 사 오곤 하던 시절이었다.

나도 엄마의 손을 잡고 산 고개를 넘어 따라갔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에도 순이 할머니는 봄이면 산나물을 뜯어다 장날마다 팔러 가면서 욕심도 많고

심술도 많은 순이 할머니는 며느리인 순이 엄마를 한 번도 시장엘 보내주지 않았다.

우리 엄마는 불쌍한 순이 엄마에게 가끔 필요한걸 장에가면 시어머니 몰래 사다 주곤 했었다.

어느날인가 순이 삼촌이 돈 벌겠다고 집에 소 판돈을 훔쳐서 서울로 도망을 쳤다.

서울로 도망간 순이 삼촌은 몇 달 뒤에 훔쳐간 돈은 모두 잊어버리고 취직도 못하자

무서운 엄마가 겁이나 고향에 돌아오지도 못하고 그만 자살을 해 버렸다.

우리들이랑 장난도 잘 치고 놀던 참 착하고 순한 삼촌이었는데...

자살했다는 소식에 많이 안타까웠었다 얼마후 다시 순이 엄마는 또 딸을 낳았고

그다음에서야 기다리던 아들을 하나 낳았다.

내가 4학년 쯤 되어서 우리 집은 다시 우리 외갓집이 있는 읍내로 이사를 왔다.

그 후 순이 엄마는 아들을 하나 더 나으려다가 그만 잘못되어

아기와 함께 죽었다는 소식을 늦게서야 전해듣게 되었다.

우리 엄마는 순이 엄마가 죽었다는 소식에 한동안 가슴 아파하며 많이 흐느껴 울었다.

너무 안됐고 불쌍하다며 .. 결국... 평생소원이던 시장 구경도 못하고

죽도록 고생만 하다 하늘나라로 간 순이 엄마 그것이 순이 엄마의 팔자였는지.. 운명이었는지.

. 불행한 여자의 일생을 지켜본 듯 지금도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 후 순이네 가족은 모두 도시로 이사 와서 순이와 여동생들은 돈을 벌기 위해 공장에 다니고

딸린 자식들.. 별난 어머니 때문에 결국 순이 아버지는 새 여자와 재혼도 못하고

순이 할머니와 함께 산다는 소문만 들었을 뿐.

그 후로는 더 이상 순이네 소식을 알 수가 없었다

맏딸이었던 순이의 가슴속에는 어머니의 그리움이 누구보다 진하게 남아 있을 것 같다.

순이도 지금은 어디선가 40대 중반의 여인으로..

어머니로 잘 살고 있는지.. 어머니의 한 많은 인생을 닮지 말고 순이는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2004.5.8.... 고은솔